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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영화 비교 벌새 vs 우리들

by 꿀팁만땅 2025. 3. 25.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큰 주목을 받은 두 작품, 〈벌새〉와 〈우리들〉은 청소년기의 섬세한 감정과 인간관계를 정교하게 포착한 성장 영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인물의 환경과 감정 표현, 서사 방식 등에서 분명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본문에서는 〈벌새〉와 〈우리들〉의 줄거리와 인물, 주제 의식을 비교하며, 두 작품이 어떻게 성장의 순간을 그려내는지 살펴봅니다.

 

벌새

줄거리 요약과 주요 인물 비교

〈벌새〉는 1994년 서울을 배경으로, 중학생 ‘은희’가 가족, 친구, 사랑, 죽음 등을 겪으며 자신만의 감정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가정 내의 갈등, 무관심, 학교에서의 단절, 병원에서의 진단, 그리고 김사영 선생님과의 만남은 은희가 성장하는 주요한 계기가 됩니다. 특히 김보라 감독은 카메라의 시선과 공간의 리듬을 통해 은희의 고독한 내면을 조용히 따라갑니다.

반면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선'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여름방학 동안 새 친구 '지아'를 만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며 겪는 관계의 어긋남이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윤가은 감독은 어린 시절의 미묘한 감정—질투, 외로움, 소속감—을 담담한 시선으로 포착하며, 작지만 날카로운 내면의 균열을 보여줍니다.

두 영화 모두 어린 여성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점,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고 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야기의 방식은 다릅니다. 〈벌새〉는 은희의 삶 전체를 감각적으로 펼쳐 보이며 인생의 ‘사건들’을 연결하는 방식이라면, 〈우리들〉은 짧은 여름 방학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통해 감정의 변화를 미시적으로 추적합니다.

성장의 방식: 고독 vs 관계

〈벌새〉에서 은희는 점점 고독해집니다. 가족은 그녀의 존재를 투명하게 취급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는 불안정하며, 감정을 터놓을 공간이 없습니다. 그런 은희에게 김사영 선생님은 처음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어른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 관계마저 오래 지속되지 않고, 선생님의 죽음은 은희에게 또 다른 상실을 안겨줍니다. 결국 은희는 스스로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며 성장합니다.

반면 〈우리들〉의 ‘선’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성장합니다. 처음엔 외톨이였던 선은 지아와의 우정을 통해 행복을 느끼지만, 그 관계는 쉽게 깨지고 맙니다. 선은 지아와 다시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결국에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와 용서를 통해 감정적으로 조금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갑니다. 즉, 선의 성장은 ‘상대와의 재연결’을 통해 이루어지는 방식입니다.

〈벌새〉가 ‘고독을 통한 내면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면, 〈우리들〉은 ‘관계를 통한 정서적 확장’을 다룹니다. 이 차이는 두 영화의 시청 경험을 완전히 다르게 만듭니다. 벌새는 관객이 인물과 함께 침묵하고 곱씹게 만들고, 우리들은 그 관계를 보며 눈물지으며 공감하게 만듭니다.

연출 스타일과 감정선의 밀도

두 영화는 모두 자연광, 정적인 카메라, 잔잔한 톤을 유지하지만, 연출의 결은 다릅니다. 〈벌새〉는 인물의 뒷모습, 침묵하는 장면, 천천히 지나가는 골목길과 집의 풍경을 자주 보여주며 은희의 정서를 공간과 시선 속에 녹여냅니다. 대사가 적고, 음악도 절제되어 있어 한 컷 한 컷이 감정을 담는 그릇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공간의 사용이 탁월해, 카메라가 은희를 따라다니기보단 곁에 머무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들〉은 인물의 얼굴을 중심으로 한 클로즈업이 많고, 대화가 중심을 이룹니다. 선과 지아의 얼굴, 눈빛, 표정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방식은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윤가은 감독은 어린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그 말 속에 숨은 감정을 조용히 드러내며, 영화 전체를 감정의 교류로 이끕니다.

이처럼 두 작품은 성장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감정의 흐름과 연출로 접근합니다. 전자의 감정선이 깊고 무거운 수직의 밀도라면, 후자는 넓고 부드러운 수평의 감정입니다.

 

〈벌새〉와 〈우리들〉은 한국 독립영화에서 성장 서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두 작품입니다. 한 편은 고독과 상실의 감정을 통해, 다른 한 편은 관계와 이해의 과정을 통해 성장의 본질을 그립니다. 두 영화 모두 일상적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로, 보는 이의 내면을 조용히 흔들어 놓습니다. 성장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이 두 영화를 함께 감상해보길 추천합니다. 정반대의 감정 속에서 공통의 울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